이건희 폰? 삼성전자의 휴대폰 혁명의 상징

이건희 폰이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얼마 전 삼성전자의 이건희 회장이 별세하면서 이건희 폰이라는 이름이 다시금 조명되고 있습니다. 비록 논란은 있었더라도 이건희 회장이 우리나라 경영인의 역사 중에서도 빠질 수 없는 인물임을 부인할 수는 없을텐데요. 이건희 회장이 삼성전자를 세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켰던 이건희 폰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이건희 폰의 등장, 애니콜 화형식

삼성전자 이건희 폰

지금은 삼성전자의 폰의 이름이 갤럭시라는 이름으로 출시되었지만, 스마트폰 등장 이전에 삼성전자의 휴대폰 브랜드의 이름은 애니콜이었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통화가 된다는 뜻의 애니콜은 전세계 휴대폰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모토로라를 타깃으로 만든 브랜드였죠.

 

이건희 회장은 핸드폰이라는 무선 단말기가 1인당 1대 수준으로 보급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휴대폰 사업에 집중할 것을 당부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1994년 애니콜이라는 브랜드로 SH-770이라는 제품이 출시되었습니다.

 

삼성 애니콜의 SH-770

애니콜이라는 브랜드의 첫 제품이었던 SH-770 출시 후 이건희 회장은 지인과 직원들에게 2천여대의 제품을 선물했으나 선물한 폰마저도 통화가 제대로 되지 않는 등 불량품이 속출했습니다. 삼성전자 애니콜의 첫 제품이었던 이 제품의 불량률은 무려 11.8%나 되었는데요. 100명이 사면 12명이 불량품을 받는 수준이었던 것이죠.

 

이건희 회장의 애니콜 화형식

이건희 회장은 1995년 3월 모든 불량품 150억원어치의 15만여대를 수거하고 구미 사업장 운동장에 쌓아두고 모두 불에 태우는 결단을 보여줍니다. 바로 유명한 애니콜 화형식입니다. 이 화형식으로 삼성전자는 제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에 심혈을 기울였고, 1995년 국내 휴대폰 시장 점유율 50%를 넘기는 데에 성공합니다. 미국의 모토로라가 유일하게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지 못한 국가가 바로 한국이었습니다.

 

1. 이건희 폰, SGH-T100의 출시

이건희 회장이 직접 관여하며 만든 제품인 SGH-T100은 삼성의 첫 밀리언셀러 폰이기도 합니다. 26만 2000 픽셀의 고화질의 LCD 디스플레이 화면을 채택했고 64화음 멜로디를 지원했습니다.

 

SGT-T100, 첫 이건희 폰으로 불렸다(이미지 출처: 삼성)

전면과 내부에 듀얼 LCD 화면을 채택했고, 조약돌 모양의 클렘쉘 디자인, 콤팩트한 사이즈로 손에 쥐는 느낌까지 좋아 인체공학적 디자인을 보여줬습니다. 이 제품은 2년만에 전 세계에 1,000만대 이상이 판매되어 삼성의 첫 텐밀리언 셀러 폰이 되었습니다. 이 제품으로 삼성전자는 노키아와 모토로라와 함께 세계 3대 휴대폰 제조업체로 등극하는 데에 성공합니다.

 

2. 제 2의 이건희 폰, SGH-E700의 등장

2002년, SGH-T100으로 성공을 맛본 삼성전자의 애니콜은 SGH-E700이라는 휴대폰을 선보입니다. 역시 이건희 회장이 직접 살핀 폰으로 알려져서 제 2의 이건희 폰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휴대폰 계의 메르세데스 벤츠로 불렸다.

노르웨이의 일간지인 아프텐포스텐에서는 2003년 12월에 휴대폰을 자동차에 비유했는데 삼성의 SGH-E700을 메르세데스 벤츠에 비유하며 극찬한 바 있습니다. 이로 인해 벤츠폰이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지금봐도 꽤 그럴듯한 디자인을 갖고 있습니다.

 

제 2의 이건희폰으로 불린 SGH-E700(이미지 출처: 삼성)

이 제 2의 이건희 폰은 안테나를 내장한 내장형 안나를 채택했고 우수한 카메라 성능을 보여주며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리고 단순히 저렴한 보급형 폰이 아닌 고가의 프리미엄 폰 전략을 채택하면서 삼성전자가 프리미엄 제품 입지를 굳히게 해준 제품이기도 합니다. 당시 경쟁자의 모토로라의 전 임원은 이 제품으로 모토로라와 삼성의 점유율이 역전되었다고 회고하기도 했습니다.

 

10Million Seller Club의 두 이건희 폰(이미지 출처: 삼성)

역시 마찬가지로 1,000만대 이상의 판매를 올려 삼성전자의 두 번째 텐밀리언셀러 클럽에 이름을 올린 휴대폰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클럽에 이름을 올린 삼성의 마지막 폴더폰이기도 합니다. 이건희 폰 2가지 폴더폰이 모두 1,000만대 이상이 팔린 것입니다.

 

3. 스마트폰의 등장, 요동친 세계 휴대폰 시장.

첫 스마트폰, 애플의 아이폰 1세대

삼성전자, 모토로라, 노키아가 장악한 세계 휴대폰 시장은 애플이 아이폰을 발표하면서 요동치기 시작했습니다. 당초 스마트폰 초창기였기 때문에 모토로라, 노키아 등은 발빠르게 대응하지 못했고 LG 전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삼성은 타사에 비해 발빠르게 대응했습니다.

 

삼성전자의 망작 중 하나인 옴니아

2007년 아이폰의 등장 이후 1년만에 2008년에 옴니아 1을, 2009년에 옴니아 2를 출시했습니다만, 대실패를 맞게 됩니다. 삼성전자의 흑역사로도 알려진 옴니아는 너무 느렸고, 스마트폰 치고는 제대로된 앱조차 없었기에 아이폰과 비교될 수가 없었습니다. 

 

4. 이건희 회장의 갤럭시 S

이건희 회장은 2010년 삼성의 경영 일선으로 복귀하면서 스마트폰 사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기 시작합니다. 다른 휴대폰 제조사들이 여전히 대응을 잘 못할 때 망해가는 옴니아를 폐기하고 2010년 6월 갤럭시 S 시리즈를 출시합니다.

 

삼성전자의 첫 갤럭시 S 시리즈(이미지 출처: 삼성)

갤럭시 S는 처음으로 구글 안드로이드 OS를 탑재합니다. 또한 OLED 화면을 채택한 최초의 스마트폰이기도 합니다. 사양만으로는 아이폰을 능가했죠. 슈퍼 아몰레드 디스플레이와 속도를 업그레이드한 CPU를 탑재하면서 2011년 1월에 텐밀리언 셀러 클럽에 삼성 스마트폰 최초로 들어가게 됩니다. 아이폰과 경쟁할만한 첫 스마트폰의 등장이었습니다. 다소 오버 스펙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삼성 내부에도 있었지만 이건희 회장의 과감함이 빛을 발한 순간이기도 하죠. 그래서 이 제품 역시 이건희 폰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삼성전자의 두 번째 갤럭시 S 시리즈, 갤럭시 S2(이미지 출처: 삼성)

2011년에 바로 이어서 발표된 갤럭시 S2 역시 1,000만대 이상 판매를 올리는 데에 성공하며 갤럭시 신화를 이어나가게 되며, 이러한 성공을 바탕으로 2020년 올해까지 갤럭시는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상위권에 이름 올리는 브랜드가 됩니다. 갤럭시 S2는 갤럭시 최고의 명기 중 하나로 뽑히기도 합니다. 그리고 당시 최단기간 삼성전자의 텐밀리언셀러 폰이기도 했습니다. 덕분에 구글 안드로이드 OS 점유율이 애플의 iOS를 초과할 수 있었기도 했죠.

 

삼성의 갤럭시 S20 시리즈

이를 바탕으로 삼성의 갤럭시 시리즈는 아직까지도 아이폰과 함께 세계에서 최고의 프리미엄 스마트폰으로 군림하고 있습니다. 특히 2G 폰 시절의 제조회사가 아직까지도 세계 프리미엄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는 것은 삼성전자가 유일하기도 합니다.

 

5. 이건희 폰?, 이건희 회장의 역할

스티브 잡스가 애플의 혁신을 이끌었다면 이건희 회장이 삼성전자의 혁신을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휴대폰이 대중화되지 못했을 때, 대중화될 것을 예견하고 휴대폰 시장에 끼어들었으며 실패를 교훈 삼아 노키아, 모토로라와 함께 세계 3대 휴대폰 제조업체로 자리잡은 일은 이건희 회장의 공에서 뺄 수가 없습니다.

 

얼마 전 별세한 삼성의 이건희 회장

이에 안주하지 않고 아이폰 출시 이후 스마트폰 시장의 성장을 예상하고 스마트폰 시장에 빨리 뛰어들었으며 옴니아라는 실패를 교훈 삼아 애플과 경쟁하는 스마트폰 제조업체로 성장한 것은 이건희 회장의 혁신 의지가 아니었으면 이루어지지 못했을 일입니다. 만약 판단이 조금이라도 느렸다면 지금의 노키아와 모토로라처럼 거의 사장될 위기에 처할 가능성이 높았을 것입니다. 아니, 그 전에 노키아, 모토로라 급의 제조업체로 올라서지도 못했을 것이고요.

 

물론 재벌 회장으로서 논란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역사에 남을 기업인, 경영인 중 하나라는 것은 부인할 수가 없겠습니다. 그 뒤를 이어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을 앞으로 맞이할 도전에서 성장시킬 수 있을까요? 삼성의 미래가 더 궁금해지는 오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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